안정복, 고려사를공부하다를 읽고
안정복, 고려사를공부하다? 책 제목만 봐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안정복하면 ‘동사강목’이 연상되는데 말이다. 판타지물인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과제에 주어진 책이 그럴리는 없을테고, 읽어보니 알겠더라. 동사강목을 쓰기 위해서 고려사를 공부했던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해가 되니 정말 쉬운 문구인데, 읽기전에는 왜 그러한 생각을 못했을까?
사실, 안정복이라는 인물은 역사공부를 좀 했는 사람이면 꽤나 친숙한 인물일 것이다. 성호 이익선생의 제자이며 ‘동사강목’을 지었으며 삼한정통론을 주장했으며 고증사학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는 특징 정도를 수능 시험이나 공무원시험을 위해서 달달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 이순신, 김구 등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오르는 인물들과 달리 안정복이라는 인물은 암기성 용 인물이라고나 할까? 잠시 그 순간일 뿐 또 시간이 지나면 누구였더라? 할 정도로 대부분 사람들에게 크게 익숙하거나 친숙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 또한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인물과 친해지고 익숙해진다는 생각에 안정복과의 조우할 것 같은 이 과정이 너무나 의미 깊을 것 같아 기대했다. 허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이 뭐 크게 깊게 다가오는 점은 없었던 것 같다. 뭐랄까? 뭔가 좀 2프로 부족하다고나 할까? 전혀 나랑 관련 없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아 책을 읽고도 보람차고 꽉찬 느낌이 아니라 공허한 느낌? 아무래도 처음부터 내가 다가갔던 관점이 잘못 설정 됐었나 보다. 일단 나는 역사 공부하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난 그나마 역사 공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가지 꼽자면 역사 강사에게 수업을 들으면서 꽉 차는 판서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흐름을 따라 가면서 필기노트에다가 나만의 색깔로 필기를 하며 별표를 치며 강사와 함께 호흡하는 시간과 그 끝났을 때의 마음 한쪽 구석이 꽉 차는 듯한 보람참. 내가 투자하고 노력했던 그 시간으로 인해 객관식 문제를 풀 때 답을 찾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역사 과목은 나에게 소중하고도 가치 있는 과목이 돼버렸다. 이러한 내 성향은 한국사검정능력 1급이라는 자격증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딸 수 있는 계기였고 다양한 사극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줬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기에 이 책을 맞이했을 때 ‘안정복에 대해서 깊이 공부 할 수 있겠구나’, ‘동사강목에 대해서 탐구 할 수 있겠구나’ 등등 시험적인 관점으로 접근했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허나, 이 책은 그러한 책이 아니었기에 내가 읽으면서도 갈피를 잘 못 잡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솔직히 깊게 파악은 못했지만 대충 보아하니 안정복이 동사강목을 쓰기 위해 고려사를 공부했던 흔적이 담긴 고려사 수택본에 관한 이야기로 안정복의 역사 연구 과정과 그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책에 보아하니 안정복이 연구한 흔적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의 역사에 관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러한 태도를 보면서는 또 한번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가 그러한 자세와 열정은 배울 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서 와 닿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역사가 전공이 아닌 내가 한국사검정능력1급을 딸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역사에 관한 태도와 자세가 진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근래에 들어서 조금씩 느끼고 있다. 바로 대학교에서 말이다.
늦은 나이에 졸업을 하겠다고 대학으로 돌아온 나는 그나마 역사에 자신이 있었기에 부전공으로 사학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전공수업으로 사학과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한달 좀 넘게 수업을 듣고 있는 나는 찜찜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중요한 포인트를 꽤나 잘 짚을 줄 안다고 생각한 난 이제 사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좀 더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역사의 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달 넘게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바로 ‘내가 이런 것까지 머리 아프게 알아야 하나? 난 역사가 전공이 아닌데?’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를 점차 보이기 시작하면서 수업에 흥미와 집중도도 조금씩 떨어지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항상 즐겁기만 했던 내 역사 공부시간이 점차 힘들고 괴로운 시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흐름과 암기 공부법에 익숙해 있던 내게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인 대학에서의 역사 공부는 소화는 못 시키고 가면 갈수록 체하기만 한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달 만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고 의욕도 많이 떨어져 있던 내게 안정복 선생의 열정과 태도는 나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물론 나도 수능외에도 역사 공부를 깊게 열심히 했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안정복 선생처럼 나도 단권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책 학권에다가 많은 내용들을 집약 시키고, 서브노트 하나 만들어서 또 내용들을 집약시키고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내 모습을 통해서, 정말 내가 역사를 좋아한다고 남들 앞에서 자부 할 수 있을까? 사학과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과연 내가 이들과 경쟁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게 웃기는 상황이지만 내 서브노트와 안정복 선생의 치열한 역사를 공부한 흔적을 비교해본다. 물론 내 생각일수도 있지만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뭐가 차이점인것일까? 몇분을 고심해봐도 답은 안 나오는게 당연지사지만 내가 어렵게나마 그냥 내린 결론은 나는 뭔가 목적이나 겉멋을 위해 공부를 하는 듯 하고 안정복선생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무튼 안정복 선생을 내 머릿속 중앙에 세워놓고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나는 과연 남들 앞에서 역사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솔직히 이유와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답을 내리면 그렇지 않다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역사 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나 자만할 때는 안정복 선생을 생각해야겠다. 단지 안정복 선생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그야 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기 때문에 나처럼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이 뿐만 아니라 사학을 전공으로 하는 이들에게 큰 롤모델이지 않겠는가? 주변에 사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 만약에 사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생긴다면 안정복 선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정말 궁금해졌고 그에 대해서 한번 얘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때에 아마 이 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안정복 선생의 동사강목 저술하는 과정을 보면서 문득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안정복 선생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고증사학의 아이콘이지 않은가? 고증학이란 무엇인가? 바로 실증적이며 객관적인 특징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의문점은 시작되었다. 객관적이어야 할 그가, 객관적이라고 자부하는 동사강목인데, 그의 고려사 연구노트를 통해 고려사 연구 흔적을 추적해보면 군주의 역사를 기록한 ‘세가’와 신하의 역사를 적은 ‘열전’ 부분에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그가 지배층의 역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 수 있는데 뭔가 모순이지 않은가? 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기전체는 본기, 세가, 열전에다가 연표, 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공부했었다. 물론, 내용자체로만 보면 세가와 열전에 비중을 많이 둘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면에서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점이 생기곤 했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감히 내가 설명은 하진 못하겠다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을 사실이다. 만약 이게 크게 상관이 없고 내가 얼토당토 안한 의문을 가진 거라면 내가 아직 학식이 많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한 역사 공부에 반성해야 할 것이고, 만약 뭔가 의문점으로 남을 수 있는 근거라면 권위있는 이론과 사실에 내가 미미하지만 약간의 반증을 주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솔직히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내 생각을 기록해 보는 것이고 이 책으론 안정복과 동사강목에 대해선 명쾌하진 못했고 미련이 남기게 되었기에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